9월 25일 주일설교요약 및 주보
아비는 미워하고 아들은 사랑하고
Father Hates, Son Loves【사무엘상18:1-9】 2022.09.25(주일)
서론
사무엘상 18장과 19장 20장에는 사랑과 미움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미워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18장과 19장 20장에는 사랑과 미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18장에는 중요한 주제가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셨고 다윗과 함께 계셨다”는 말씀입니다(12, 14, 28).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하나님은 미움 쪽을 떠나서 사랑 쪽에 함께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일 4:8, 16).
사울도 처음에는 다윗을 사랑하였습니다. 다윗이 성령의 능력으로 사울에게 붙어 있던 악신을 쫓아내는 일을 하였고 또한 골리앗을 죽이고 나라를 구했을 때는 다윗을 사랑했었습니다.
사울이 어떻게 해서 미움의 사람 시기와 질투의 사람으로 변했을까요? 우리는 사울에게서 적그리스도의 모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울은 처음엔 거짓 평화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려 하고, 영매자를 찾고, 결국엔 자살로 인생을 끝내고 말았습니다. 이 무서운 미움과 시기와 질투는 마귀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1. 미움은 사탄으로부터
미움은 시기와 질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질투를 사탄과 연결시킨 것은 에덴 동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과 아담과 하와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였습니다. 이것을 질투한 사탄은 인간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욕심과 교만을 미끼로 사용하여 그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에덴동산의 사건은 하나님과 사람의 사랑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죄요 타락이요 죽음으로 묘사됩니다. 그 결과를 실락원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질투란 단순한 죄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무서운 타락의 출발점이란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사탄은 미움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이시고 사탄은 사망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이시며 사탄은 거짓입니다. 하나님은 영광이시며 사탄은 흑암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영원한 천국이고 사탄의 영원한 거처는 불못입니다.
7-8절을, 10-11 절에 질투의 결과의사울은봅시다. 그는 다시 번뇌와 정신 건강이 뒤틀려 자신을 병들게 하였고 다윗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두려워하게 되었고(12), 불안은 증오로 변했습니다. 그 미움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어 광기로 나타나 자기를 위하여 수금을 연주하는 다윗을 향하여 세 번이나 창을 던져 죽이려는 망녕된 행동을 거듭하였습니다(18:11, 19:10).
2. 미움에서 파생된 시기와 질투
(1)시기와 질투는 멸망입니다( 욥 5:2)
(2)시기는 불행입니다(잠 14:30)
(3)투기는 음부의 불과 같습니다(아 8:6)
(4)시기에는 모든 악한 것이 들어 있습니다(약 3:14-18)
사울의 시기와 질투는 악한 생각으로 이어져 딸까지 이용합니다. 맏딸 메랍을 다윗에게 주기로 약속하고 미끼로 다윗을 낚아 전쟁의 최전방에 내 보내 죽게 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18:17). 그러나 사울은 약속을 어기고 맏딸을 아드리엘이라는 사람에게 결혼 시켰습니다.
또한 사울에게 곤란한 일이 생겼습니다. 사울의 둘째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겸손하게 왕의 사위가 될만한 자격이 없다고 사양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블레셋 군인 100명의 양피를 요구하였고 다윗은 그 요구조건을 채우고 미갈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28-29절에 “28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고 사울의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하므로 29사울이 다윗을 더욱 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고 하였습니다.
3. 진정한 사랑과 우정
19장부터 요나단이 등장합니다.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은 오늘날까지 우정의 모델(본)처럼 인용되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사울을 이을 왕세자인데 다윗을 동생처럼 무척 사랑했습니다. 이 사실이 사울을 더욱 괴롭게 만듭니다. 내통자가 생긴 것입니다.
어떤 학자는 사무엘상 25:29절을 근거로 요나단이 구원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상 19:4-6절을 보면 요나단은 그리스도인의 유형을 예표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윗을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볼 때 요나단의 다윗에 대한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의 예수께 대한 모형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요나단은 다윗과 사랑의 계약을 맺었습니다. 사무엘상 20:16절에 의하면 요나단은 다윗의 집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랑의 계약을 맺는 것과 같은 계약입니다.
사무엘상 20:17절에 의하면 “17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계명 곧 약속에 의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37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신명기 6:2-5절에 기록된 말씀이 구약입니다. 이것을 예수께서 재확인 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피로 서명하신 것이 신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20:42절에 의하면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으로 들어오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계약은 파약할 수 없는 진실되고 거룩한 약속입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은 이런 사랑입니다.
다윗은 계약을 성실히 이행하였습니다. 후에 사울의 왕가는 몰락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왕이 된 후에도 요나단과의 계약을 기억하고 요나단의 아들 절름발이 므비보셋을 평생 자기의 식탁에서 겸상하며 보살펴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계약을 맺은 성도는 주님의 식탁에서 함께 먹고 마시며 식사하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비록 절름발이 신세로 온전치 못한 신체장애자이지만 그것을 모두 식탁보 밑에 다 감춰주시고 우리를 그윽한 사랑의 눈동자로 잠잠히 사랑하시며 끝까지 보호해 주시며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사랑의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은 미움과 시기와 질투의 편을 떠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거짓과 미움과 시기와 질투 모든 나쁜 것들을 하게 하는 악한 자입니다.
사울은 초기에 겸손하고 훌륭한 왕으로 출발하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의 본색이 점점 드러났습니다. 거짓 평화를 추구하였습니다. 그는 미움과 시기와 질투의 사탄의 화신이었습니다. 그는 여러모로 보아 적그리스도의 모형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는 최고의 우정(필레오)의 모형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사랑하실 때 필레오(사랑: 요 5:20),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 (필리아: 요 16:27), 예수께서 나사로를 사랑하신 것도 필레오(사랑: 요 11:3)입니다.
다음의 질문에 답해 봅시다.
(1)미움과 시기와 질투는 누구에게서 왔나요?
(2)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는 어떤 관계입니까?
(3)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