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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kohama Glory Church

요한복음15장7-17절

2018.02.14 17:45


∼여러분들이 나에게 머물고, 나의 말이 여러분들에게 머무른다면, 무엇이든지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세요. 그렇게 하면, 여러분들을 위해서 그것을 들어맞출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많은 열매를 맺고, 나의 제자가 되는 것에 의해, 나의 아버지는 영광을 평판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받은 것 같이, 나도 여러분들을 사랑했습니다. 나의 사랑 안(속)에 머무르세요. 만일 여러분들이 나의 훈계를 지킨다면, 여러분들은 나의 사랑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나의 아버지 훈계를 지키고, 나의 아버지 사랑 안(속)에 머무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이 것을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한 것은, 나의 기쁨이 여러분들 가운데에 있어, 여러분들의 기쁨이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여러분들을 사랑한 것 같이, 여러분들도 서로 서로 사랑하는 것, 이것이 나의 훈계입니다. 사람이 그 벗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고 하는, 이것보다도 큰 사랑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명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한다면, 여러분들은 나의 벗입니다. 나는 이미, 여러분들을 나(저)라고는 부르지 않습니다. 나(저)는 주인이 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을 벗과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전부, 여러분들에게 알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여러분들을 선택하고, 여러분들을 임명한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가서 열매를 맺고, 그 여러분들의 열매가 남기 위해서이며, 또, 여러분들이 나의 이름에 의해 아버지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아버지가 여러분들에게 주러 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들이 서로 서로 사랑하는 것, 이것이, 나의 여러분들에게 주는 훈계입니다. ∼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남기신 최후의 만찬의 때 하신 설교가 아직 계속되어,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너희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라고 몇 번이나 예수님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이 나가서, 이 지상에서 열매를 맺고,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 열매가 남아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께서 오늘 하신 말씀입니다. 이 『열매를 맺는다』 하는 뜻이 무언가?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지상에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크리스천들의 해석이 서러 틀리거나, 혹은 생각이 틀리거나 한다. 그것을 오늘,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우리가 잘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

열매를 맺기 위해서 첫째로, 무엇이든지 구하여라. 하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다. 그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여라.』또 계속해서 예수님이 말씀 하신다. 16절에

∼ 그것은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고,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서 너희에 주실 것이다.

두 번이나 예수님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나에게 구하고, 내 이름으로 기도하여라.」라고 하신다. 여기서 말하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이 필요한가? 첫 번째 예수님의 가르침이, 『기도하여라』입니다. 기도를 해야 한다고 크리스천이라면 아는 사실이지만, 기도에 대해서, 예수님이 무엇을 우리에 요구하고 있을까요? 기도하면 이 지상에서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을 합니다. 그 기도에 관해서 크리스천들은, 마치 호흡하듯이,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에게 기도하는 것은 크리스천에 있어서는, 호흡하는 것과 같다. 숨을 쉬고 내쉬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기도는 정말로 숨을 내쉬는 것 같은 자연스러운 일인가? 이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도는 그런 자연스럽게 되는 일이 아닙니다. 구원 받고, 예수님 앞에서, 곧 바로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그럼 호흡하듯이, 의식도 없이, 아무런 자각이 없이도 기도할 수 있게 될 것인가? 그것은, 틀립니다. 기도는 어느 정도 훈련이 필요 하다. 이 훈련이나 수련은 도대체 무언가를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지상에서 열매를 맺기 위해서 제일 처음에 예수님이 명령하고 있는 것이, 이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는 시간적으로, 몇 시간 기도했다고나, 교회에 와서 매일 기도했다고나 하는 것이, 여기에서 말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야곱은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야고보서 5장 16-18∼ 서로 죄를 고백하며, 병 낫기를 위해 서로 기도해 주십시오. 의로운 사람이 기도 할 때,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엘리야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구했더니, 삼 년 반 동안, 그 땅에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 후, 다시 기도하자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고, 땅에서 다시 곡식이 자랐습니다. ∼

야곱이 말하는 중요한 내용은, 「의인의 기도는 큰 힘이 있다. 」 큰 영향력, 큰 효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것은, 『아무나』가 아닙니다. 『의인』의 기도는 응답이 있고, 큰 능력이 있어, 엘리야가 비를 멈추거나, 또 비를 내리게 하거나 할 만큼의 힘이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기도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이, 여러 가지 말을 하지만, 의인의 기도는 보통 기도와는 다릅니다. 정말로 힘이 있습니다. 능력이 있고 효력이 있는 기도란 도대체 어떤 기도인가?

종교 개혁자인 마루틴·루터는 결국 나라에서 추방되어서, 어떤 성에 숨어있을 때에, 그는 열심히 기도하면서 지냈지만, 성경을 번역하는 일에 집중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성경책의 번역과, 성경을 연구하는데 아주 바쁠 때에도, 마루틴·루터는 하루 3시간, 반드시 기도를 최우선으로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와 그의 신앙 생활을 본 사람이 자기 친구에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마루틴·루터는, 이 어려운 상황에서, 그리고 정말로 괴로운 고난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며, 쾌활하며, 항상 기도하고, 항상 믿음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구하는 그 기도 내용을 듣고, 정말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라고 썼다. 무엇을 놀랬냐 하면, 하늘의 아버지 앞에서 겸손하게 또 두려워하면서도 아버지와 정말로 친한 사람과 같이 기도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정말로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서 기도하고 있었다. 그의 기도에는 정말로 힘이 있었다. 의인의 기도는 이렇듯 능력이 있다. 그 기도가 있었으니 마루틴·루터는 정말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겨내며 마지막까지 참고 인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종교 개혁을 위해 일 한, 스코틀랜드의 존·녹스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유명한 스코틀랜드의 종교 개혁자이다. 무엇이 유명한가 하면 아주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그 때의 스코틀랜드의 여왕은 딱딱한 천주교, 가톨릭신자이므로, 이 종교 개혁을 하는 존·녹스를 박해했다. 이 메리·스튜어트 여왕은 그를 대단하게 박해했지만, 친구에겐 이렇게 말했다. 2만명의 병사보다, 그 한 명의 기도가 더 무섭다. 그것은 2만명 병사가 있어도, 그 한 사람, 존·녹스란, 이 의인의 기도가 더 힘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여왕은 그를 박해하면서도 그의 기도를 인정 안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역사를 보아도, 이 종교 개혁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고, 정말로 박해와 고난의 연속이며, 로마·가톨릭을, 또한 전세계를, 그리고 국왕마저도 원수가 되는 개혁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그들은 기도로 승리 하고, 그리고 그들의 기도는 누가 들어도, 누가 보아도, 적들도 두려워하는, 그런 효력이 있고 힘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지금,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아버지는 너희 기도를 들어 주신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기도하여라.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그 뜻은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기도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자기 소원이나, 자기 욕심, 교회에 가서 기도하면 된다, 하는 기도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되는 기도이어야 한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하신 기도입니다. 내 소원이 아니라, 하늘의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기를 원합니다, 하는 기도이었습니다. 자기 하고 싶은 것, 자기 원하는 대로, 하나님이 나에게 주목하고, 나에게 잘 해 주라는 그런 기도가 아니라, 한 시간이나, 또한 3시간도 기도 했다, 매일 교회 나가서 했다는 기도모임이 아니고, 마음에도 없으면서 하라고 하니 그냥 말로만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그런 기도는 아무런 효력도 없고 아무런 힘도 없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류도 없다. 그러므로 그런 기도는 예수님이 일을 하지 않으며, 하늘의 아버지가 영광을 받으실 수도 없습니다. 열매가 없는 기도는 의미가 없습니다.

로이드·죤즈선생님은 기도란, 기독교의 교리,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에 대한 깊은 지식에 따르지 않으면, 참 기도는 할 수 없다고 한다. 예수그리스도와 관련하지 않는, 하늘의 아버지께서 영광을 못 받으시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며, 그리고 예수님께서 주신 은혜, 이 은혜의 교리를 정말로 아는 지식이 없으면, 참 기도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하게 된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나의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이 가득,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

「내 계명을 지켜라.」 그리고, 「이제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내가 기뻐하고, 그리고 너희도 기뻐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기쁨이란 단어가 있지만, 예수님의 묘사에 있어서,『격하였다, 화 내시다,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셨다.』하고 표현되어 있지만, 예수님이 기뻐하여 웃으신 묘사는 한번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기뻐하고, 웃고, 즐기는 장면은 하나도 씌어져 있지 않다. 고난 받으시고 사람들이 채찍질하고, 얼굴을 때리며, 못박았다, 란 묘사밖에 없다. 예수님은 그렇게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은 지금, 「내가 기뻐하고, 그리고 너희 안에서 기쁨이 채워진다」라고 말씀을 하셨다. 과연 예수님은, 즐겁게 지내신 장면이 하나도 없는데, 무엇을 기쁘다고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모든 영광을 버리고, 하나님으로서의 그 능력을 감춰서, 육을 입으시고, 인자로써 오신 것을 기뻐하고, 지금 죽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소리 내고 웃고 즐기고, 감정이 흥분하고, 그런 기쁘다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예수님은 하늘의 아버지 명령을 지키고, 하늘의 아버지의 그 일이 완수되어, 그 길을 가시고, 그것을 성취하시니 기쁘다고 하셨지, 예수님께서 한번도 웃으신 적은 없습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죽기까지 순종 하신, 그것을 「나의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이 가득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셨다. 지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야기 하신 『기쁨』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행하는 일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이 죽기까지 순종 하고, 너희들의 죄를 위해서 내가 죽는 것을, 그것을 나는 기뻐하고 있다. 그리하면 너희도 기쁨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것을 행하면, 너희는 내 친구다. 이제 내가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 방금 전에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내가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기 때문이다. ∼

예수님이, 「이제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그 의미는, 당시 로마 시대도 그렇고, 봉건 시대에 있어서, 왕의 친구라는 칭호는 실제로 있었다. 왕의 친구란 도대체 누군가 하면, 다윗 왕한테도 있었고, 솔로몬 왕에게도 『왕의 친구』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 사람들은 왕의 가족보다도, 장관과 각료들보다도, 왕의 친구가 왕에게 회견을 신청하기가 간단했습니다. 왕의 친구가 만나고 싶을 때, 왕의 알현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정도, 가족보다도 각료보다도 친한 사이에 있다. 당시 왕의 친구라 부른 것은, 그러한 높은 신분이었다. 하물며, 구약 시대에 하나님이 친구라 불렀던 것은, 단 한 사람밖에 없다. 아브라함입니다. 그 아브라함을 향해서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킬 때에, 「내가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어떻게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하나님이 말씀하셨다. 그리고 드디어, 아브라함에게 그 사실 그대로 고백하셨다. 「나는 지금,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러 간다」 아브라함에게 진실을 말하며, 하나님의 비밀을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이 「이제 내가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이 아브라함처럼 친하게 이야기 하신다는 의미이지만 그러나, 여기는 우리를 친구라 하셨다고, 이제 예수님이 마이 프렌드와 같은, 집안의 한 사람처럼 생각해서 좋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와 동등한 입장에 있는 분이 아닙니다. 모든 주권을 가지고 계시며, 전지 전능의 하나님이시니 인간이 마음대로 가깝게 지낼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거기를 착각해서는 안 될 이유가, 예수님이 여기서 『친구라 부른다』고 하는 것은, 내가 행하는 것, 지금부터 십자가에 걸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내가 목숨을 버리며, 또한 부활하고 성령님이 오셔서, 성령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전부 너희들에게 가르칠 때에,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이었는가를, 너희에게 다 알게 한다. 주인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고, 단지 명령만을 지키는 노예와는 다르다. 종이었을 때에는 이유를 알 수 없어도, 받은 계시를 몰라도, 이해가 가지 않아도,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노예가 아니라, 너희를 위해 내가 죽음으로, 너희가 이제 나를 알게 된다. 그래서 친구라 불렀다, 이 뜻은, 인간의 신분이 올라가거나, 하나님과 동등해지거나, 가까워지거나 한다는, 신분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하기 때문에』라고 하신다. 예수님이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서, 성령님을 너희에게 보냈을 때, 너희는 알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 이해하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친구라 부른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즉, 인간의 신분이 노예부터 친구로 승격했다는 그러한 차원이 아니고, 인간에게 예수님이 보답해야 할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일이, 그리고 예수님이 너희에게 가르치기 때문에, 친구라 부른다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 그것은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고,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

내가 너희를 택한 것이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너희들을 임명하고, 서게 하기 위해서다. 이것은 가서 너희 열매를 맺기 위해서다. 우리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 우선 첫째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둘째로, 열매를 맺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 하셨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 임명했다. 그리하면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는다. 단지 우리 마음이 거룩해진다, 더럽고 악한 마음이 깨끗함을 얻는다든가, 죄가 우리 안에서 제거되어 씻겨, 열매를 맺는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임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명하고, 서게 해서, 일을 주기 때문이다. 여기는 성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너희가 가고,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가서,』라고 하는 여기는, 떠나야 한다, 하는 의미다. 어딘가, 란 목적지는 쓰지 않아도, 너희는 여기를 떠나 가지 않으면 안되다. 그리고, 열매를 맺지 않으면 안되다. 이 말은 첫째로, 전도하여라.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하신 최후의 계명이,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 이것이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야하며, 여기를 떠나서, 온 누리에 선교하며 전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너희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다. 전도해서 열매를 맺기 위함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전도해서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많은 사람이 구원 받고, 교회로 다닌다, 하는 그러한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서,』는, 『떠난다』하는 것과 동시입니다.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 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하고 예수님이 그 전에 말씀 하신 것처럼, 『떠난다』는 목숨을 버리는 각오란 의미이다. 내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설명하신 후에, 너희도 가라, 떠나서 내가 한 것처럼, 너희도 자기 목숨을 내놓는 각오를 하고, 이웃 사람을 위해, 전도나 선교를 하는 각오를 가지고, 이 땅에서 열매를 맺도록 하여라. 이러한 명령입니다. 우리 안에서 성화를 이루고, 크리스천끼리 모여서, 예배하고, 손뼉 쳐서 찬양하라는 것을 말씀 하신 것이 아니라, 『떠나라.』고 하셨다. 일어나라, 그리고 나가라.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그리고, 이웃을 위해 너희는 믿음의 각오를 가지고, 온 누리로 나가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바로 내 계명이다. 이 말씀과, 내가 그 안에 있으면, 그는 열매를 많이 맺는다. 내 안에 있으라. 이라고 하는 것과, 아버지의 말씀이 너희 안에 있으면, 내 제자인 것을 나타낸다는, 이 말과 같은 의미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의인의 기도를 말한다. 그 기도는 의인의 능력이 있고, 그 효력이 나타나며, 그리고 큰 일을 할 수 있는 정도의 힘있는 기도를 하게 되어, 그 의인의 기도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의 제자가 된 사람만이, 의인의 기도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님 안에 내가 있으며, 예수님 말씀이 내 안에 있고, 그리하여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고, 일어나, 나가서 전도하고, 그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의인의 기도.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 제자가 된다고 하는 것이, 도대체 어떠한 것인가? 과거, 많은 순교자가 있었다. 기원 2세기, 로마로부터 가장 박해가 심할 때이다. 많은 크리스천이 짐승에 찢어져서 죽었다. 본보기로 하는 경고 사형이 많이 진행된 시대이다. 그 중에서 2세기경 짐승, 사자의 어금니로 죽은 한, 유명한 선교사가 있다. 그 선교사가 마지막으로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가 지금도 남아 있어서, 그 편지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빨리 짐승이 나를 찢으면 좋겠다. 만일 짐승이 나를 찢는다면, 나는 스스로 그것을 원한다. 나는 짐승의 송곳니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드디어 지금 죽음을 눈앞으로 해서, 내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이 몸이 고문이나, 어떤 불이나, 십자가형이나, 어떤 짐승의 송곳니에 신체와 손과 발이 찢어져도, 나는 그것을 스스로 소원한다. 」이런 편지 내용이다. 『드디어, 제자가 되기 시작했다. 』 그는 원래가 믿음 있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시리아에서 로마로 사형 때문에 가는 그 도중에, 편지를 쓴 것이다. 그리고 그는 순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드디어 제자가 되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더구나 의인의 기도는, 이 제자만이 할 수 있다. 이 제자가 되어야 의인의 기도, 큰 힘이 있고, 이 메리·스튜어트 여왕처럼, 가톨릭 신자라 하여도, 종교 개혁자, 의인의 기도를 두려워했던 것이다. 마루틴·루터가 이 어려운 상황에서, 최후까지 성경의 말씀을 지켜, 끝까지 기도하며, 또한 많은 순교한 크리스천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사람들이 모두 갔던 길이다. 끝까지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는 것입니다. 친구를 위해 자신을 버리고, 예수님에게만 따라 간다. 그래서 그들의 기도와, 또 그들의 하는 말에는 힘이 있고, 그리고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그 기도가, 제자의 기도이고, 의인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지 않으면 아무 열매를 맺을 수 없으며,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방법도 없다.

우리는 호흡하듯이 주님께 기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처음부터 신앙이 크고 마음이 뜨거운 사람도 없고, 하나님의 은혜가 뭔지를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시간이 필요하고, 훈련도 공부도 필요합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는 교사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기도를 시작하는 것은 지금부터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 기도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듣고 계십니다. 문제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 순수한 믿음을 허락해주시기를 주님께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