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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Christ Glory Church

요한복음15장1-6절

2018.02.14 17:40


~나는 진실의 포도 나무이며, 나의 아버지는 농부입니다. 나의 가지로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은 전부, 아버지가 그것을 제거하고, 열매를 맺는 것은 전부, 더 많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 깎아서 손질을 하십니다. 여러분들은, 내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한 말에 의해, 이제 깨끗합니다. 나에게 머무르세요. 나도, 여러분들 안(속)에 머무릅니다. 가지가 포도의 나무에 대해서 없으면, 가지것만으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동일하게 여러분들도, 나에게 머무르지 않고 있으면, 열매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나는 포도의 나무에서, 여러분들은 가지입니다. 사람이 나에게 머물고, 나도 그 사람 안(속)에 머무르고 있다면, 그러한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나를 떨어져서는, 여러분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만약 나에게 머무르지 않고 있으면, 가지와 같이 내버릴 수 있어서, 시듭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한데 모아서 불에 던져 넣으므로, 그것은 불타버립니다. ~

최후의 만찬의 날에 아직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해서 긴 설교가 계속되고 있고,그리고, 오늘은 저 유명한 포도의 나무 우화를 예수님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지 않고 있는 일반의 유대인이 아니고, 제자들에게 함께 이야기 하고 있다라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크리스천에 함께 이야기 하고 있는 최후의 예수님의 유언이며,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무엇을 요구되고 있을 것인가,라고 하는 것이 이 포도의 나무 예입니다. 그리고, 이 유명한 예의 한 구절로 「나는 진실의 포도 나무이며, 나의 아버지는 농부입니다. 」 이렇게 쓰여져 있지만, 포도의 나무라고 하는 개념은, 구약 성서 안(속)에서, 이스라엘인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묵은 약속 시대부터 포도의 나무는 무엇에 비유되어 있었는가라고 하면, 시편의 작자도 함께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80편 8절∼당신은, 이집트에서, 포도의 나무를 지니기 시작해, 각국을 내쫓고, 그것을 심어졌습니다. ∼ 

이렇게, 이집트에서 포도의 나무를 지녀서 가나안 땅에 심어졌다. 과, 구약 성서 안(속)에서도 포도의 나무라고 하는 예는 쭉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포도의 나무는 누구를 상징해서 누구를 말하고 있다라고 하면, 당연 이스라엘의 국민입니다. 신에게 뽑혀서 신이 종(씨앗)을 뿌리고, 신이 물을 주고, 신이 때에는 깎아서 손질해 만약,그리고 신이 길러 온 것입니다. 그리고, 신 앞에서 포도의 나무라고 하는 것은, 신의 선민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국민입니다. 쭉 아브라함에게서 신은 약속해 와서, 이 이스라엘의 국민에게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하고, 이 땅에서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내가 기르고, 내가 심은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집트에서도 데리고 나가고, 내가 가나안 땅에 나르고, 거기에서 내가 심은 것이다,라고 하는 것처럼, 내가 선택하고, 내가 길렀다. 나의 열매. 그것이 이스라엘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묵은 약속의 때부터 쭉 이스라엘은 포도의 나무, 혹은 포도 말야 말하는 것이, 선민들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태어나시는 조금 앞의 이스라엘 화폐 안에는 포도의 나무 표시가 밀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포도의 열매입니다. 그 위에, 신전 앞에 돈으로 된 포도의 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국민들이 스스로 개인적으로 獻물건 해 나간 것입니다. 그 포도의 열매와, 포도의 나뭇 잎과, 그것을 황금으로 된 것을 신전 앞에 두고, 자신들이 신에게 뽑힌 국민, 자신들이 신에게 지켜지고 있다라고 하는 상징으로서, 모두 獻물건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포도의 송이를 獻물건 하고, 어떤 사람은 포도의 잎을 獻물건 하고, 황금으로 만든 것을 신전 앞에 두는 것입니다. 포도의 나무로서. 그것이 이스라엘에 있어서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은 선민. 자신들은 뽑혀서, 자신들은 모세로 당겨 연들 れて신이 이 땅에 자신들을 인도해서 심어 주시고,그리고 또 방랑의 여행에 가도,또 예루살렘에 되돌려서 내리고, 자신들이 포도의 나무, 신의 포도 나무 말야 말하는 자랑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자랑을 가져서 화폐에도 인을 찍고, 자신들의 신전 앞에도 모두 모여서 모두가 순금과 황금을 가져서 포도의 송이를 獻물건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묵은 약속의 시대부터, 이스라엘의 국민이 포도의 나무,라고 하는 상징이었는데도, 여기에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다른 것을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포도의 나무だ』이스라엘의 국민이 아니고, 내가 그렇다. 예수그리스도 바로 그것이, 지금, 포도의 나무다. 라고 말하고,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국민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과는 다르는 것을 예수님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그 전의 우화라도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빌려줬다. 그리고, 수확의 때가 왔으므로, 그 수확의 열매를 받으려고, 우리들을 보냈지만, 그들은 몰살로 하고, 창피를 당시켜,그리고 자신의 어린이를 보냈을 때에는 공경해 줄 것인,이라고 생각해서 보냈을 때에는, 포도원의 농부들은 무엇을 했다라고 하면, 그 어린이마저 죽여버렸다. 그 때에 주인은 어떻게 합니까? 그 포도원을 여러분들에게서 빼앗아서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닙니까? 이라고 하는 우화를 예수님이 하고 있습니다. 그 우화가, 지금, 여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확실히 내가 선택하고, 내가 길러 왔다. 그리고 나는, 열매를 가득히 다물게, 정말로 모든 방법으로, 하늘로부터 마나를 내리게 하고, 바위로 물을 마시게 하고, 여러분들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키워 길러 왔다. 그리고 수확의 때가 왔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서 열매를 보려고, 내려 오면, 이 이스라엘의 국민은 무엇을 했는가? 정말로 바라며 기다려 온 【메시야】를 죽여버린다. 여러분들은 처음에 예언자를 보냈을 때에도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고, 이 예언자를 잇달아 죽인 뒤로, 신의 아이가 왔을 때에는, 이스라엘의 국민이 이제 일회신에 되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되돌아온다기는 커녕, 그 아들마저도 죽여버리는 것이 아닌 것인가?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었던 포도농원은, 이제 여러분들은 떼져서, 다른 국민에게 건네 주는 것이다. 이라고 하는 것이, 오늘 한 구절입니다. 

제자들을 향하고, 제자들은 당연 유대인, 이스라엘인이었기 때문에, 포도의 나무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이제 착각해서는 안된다. 이제, 이스라엘이 포도의 나무가 아니고, 내가 포도의 나무다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 파울로도 하고 있습니다. 「종(씨앗)을 뿌리고, 물을 뿌려도, 키우는 것은 신이다. 」 그리고, 여러분들은 신의 밭입니다. 과 파울로가 말합니다. 파울로가 말한 것은 누구세요? 크리스트 교도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태(Judaical) 교도가 아니고, 크리스트 교도에게 파울로는 이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유대인이 아니고, 이방인이라고 하는 개념이 아니고, 크리스트 교도에게 옮겨요. 크리스트 교도야말로, 내가 이번 열매를 맺게 하는 상대, 무엇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다든가 이방인이다든가,라고 하는 구별이 아니고, 어느 나라라든가 누구라든가고 말하는 구별이 아니고, 크리스트 교도에게 나는, 이번, 나의 나무를 기른다고 하는 것을 이행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인이 포도의 나무에서는 없어지고, 이스라엘인이 선민에서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신이 선택한 국민에서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대인이 완전히 버릴 수 있는 것인가라든가 말하는 차원이 아니고, 그리스도교로 옮겨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예수그리스도가 포도의 나무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니고.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교, 교회가 포도의 나무가 되어 간다. 이라고 하는 것이, 오늘 예수님이 제1절로부터 말씀을 해서 제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중요한 유언합니다. 이제부터는, 나의 이름으로 기원하고, 나에게 기원하고, 내가 것을 이루는, 그 것자체가 나 바로 그것에서, 나 바로 그것이, 진리이며, 목숨이며, 길이다라고, 예수님이 함께 이야기 하고 계신다. 그것은 나다. 이번에는 나에게 모이지 않으면 안된다. 뽑힌 선민이 아니고, 나야말로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옮겨갔다고 말하는 단지 빗나가 것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하고 있는 것은, 지금부터는 크리스트 교도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이 포도밭을. 여태까지는 유대인, 뽑힌 선민에 포도밭을 맡겨 왔지만, 이제부터 예수님이 맡기려고 계시는 포도밭은 그리스도교들에게, 크리스천들에게 나는 맡겨 간다. 과 말씀을 하고 있다. 

∼나의 가지로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은 전부, 아버지가 그것을 제거하고, 열매를 맺는 것은 전부, 더 많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 깎아서 손질을 하십니다. ∼

<p>여기는, 「나의 가지로 열매를 맺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에게 우선은 달라 붙어 있다고 것이지요? 예수그리스도가 포도의 나무다면, 우선 예수그리스도에게 붙어서는 있는 가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지는 언제까지 지나도 열매를 맺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베어내 간다. 과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논 크리스천에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에게 붙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크리스트 교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 교도이어라, 크리스천이어라, 열매를 맺지 않는 사람은, 내가 떼 간다. 

∼여러분들은, 내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한 말에 의해, 이제 깨끗합니다. ∼ 

이것은, 제자의 빠져나올 때에도 말씀 지금 했다. 제자의 빠져나오려고 했을 때, 베드로가 「아니, 아니, 제 빠져나오지 말아 주세요. 」라고 말하면, 「그렇게 하면, 당신과 나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달라붙지 않고 있으면, 당신과 나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이야기되면, 베드로가, 「마지못해서, 그럼 머리도 전신도, 씻어 주세요. 저는 더럽혀지고 있을 테니까. 」라고 말했을 때에, 「아니요, 당신은 이제 성 있기의에서 한다. 그리고, 당신은 이제, 발이외 씻을 필요가 없어요」라고 예수님이 빠져나올 때에 베드로에게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것과 이것은, 같습니다. 나에게 머무르고 있으세요. 그러므로, 나에게서 빠져나오게 하지 않으면, 당신과 나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제, 성 있기의에서 한다. 라고 말한 것은, 단지 베드로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면, 이전 설명했습니다. 그 때의 베드로의 태도와는 관계없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가설되어서 죽어 주시고, 예수님이 되살아나고, 예수님 혼자서, 예수님만이 하신 것이 성취하므로, 당신은 이제 성 있기의에서 하는,이라고 하는 의미이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어떻다든가라고 말하는 이야기로는 없습니다. 베드로가 뭔가 예수님에게 충실했기 때문에, 베드로가 뭔가 예수님을 특별히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베드로가 뭔가 신앙 심지가 굳었기 때문에라고 하는 것이라도 아닙니다. 그 후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도 배신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말하고 있으므로지 않습니다. 내가 선이기 때문에, 내가 죽음과 부활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의 권위를 타파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신은 성 있기의에서 한다. 인간측이 성 있기의가 아닙니다. 내가 성 있기로부터, 당신도 성 있어. 그러한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빠져나오고 있을 때부터 쭉 말씀을 하고 있어서, 지금도 말씀을 하고, 나야말로가 그것이라고, 요한은 계속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고 에이미』. 예수님이, 나인, 『에고 에이미』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에고 에이미는 에고이스트(egoist)입니다. 에고이스트(egoist)는 자신의 제멋대로. 독단이라고 하는 의미합니다. 이 업은 나만이 하고 있다. 이 성스러움은 나 만의나 되는. 과 예수님은 지금도 여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만이다,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아니다. 이것이 포도의 나무 특징입니다. 

그리고, 점차 더 분명히 말합니다.

∼나에게 머무르세요. 나도, 여러분들 안(속)에 머무릅니다. 가지가 포도의 나무에 대해서 없으면, 가지것만으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동일하게 여러분들도, 나에게 머무르지 않고 있으면, 열매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 

이것은, 아까 말씀을 한 것을 더 명백에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나와 연결되지 않고 있으면, 나의 가지가 아니면, 당신은 어디에서 그 힘을 받는 것입니까? 그 성스러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그 지혜는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여기가, 장·칼뱅(Calvin)이 말하고 있는 대로입니다. 인간에게서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좋은 것도, 성 있어 물건도 결정해없습니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선따위 내지, 인간에게는 자기의 의따위 없습니다. 사악해서 사탄과 같은 자질로, 우리들은 신에게 반역하는, 그 죄가 많음밖에 없다. 이런 우리들이 아무런 노력했기 때문에라고 성째들 れ홉? 어떤 열심을 가진다고 해서 훌륭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까? 나가 아니면, 무리입니다. 나에게 연결되어도 좋으면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베드로이어라, 파울로이어라, 어떤 위대한 인물이어라, 아무도 예외없음에, 예수에게 연결되지 않고 있으면, 아무도 성く은 될 수 없으면 예수님이 말씀을 하고,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포도의 나무가 아니고, 나야말로가 포도의 나무에서, 나에게 연결되지 않으면, 어느 아무도, 유대인에서도 이방인이라도, 아무도 구제되지 않는다. 이것을 제자들에게 지금, 이제 분명히, 명확히, 다른 것은 일절 없다고 하는 진리를, 그리스도교의 토대, 기초인 교리를 지금 예수님 자신이 분명히 제자들에게 유언으로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포도의 나무에서, 여러분들은 가지입니다. 사람이 나에게 머물고, 나도 그 사람 안(속)에 머무르고 있다면, 그러한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나를 떨어져서는, 여러분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p>여기에 진리의 대답이 있습니다. 나에게서 벗어나고 있으면, 여러분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보내고 있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자신의 의지로, 자발적으로, 자립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열매를 맺지 않으면, 나는 절대로 떼어버려 가요. 이것이 예수님입니다. 나에게 달라 붙어 있어도, 열매를 맺지 않으면 떼어버린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누구나, 만약 나에게 머무르지 않고 있으면, 가지와 같이 내버릴 수 있어서, 시듭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한데 모아서 불에 던져 넣으므로, 그것은 불타버립니다. ∼ 

이라고 하는 것이 오늘, 포도의 나무 예입니다. 이것을 많은 사람이 설교합니다. 그리고, 사카키바라 선생님도 설교하고, 이 부분은 유명한 설교이기 때문에 하고 있지만, 여기에서, 여러가지 목사가,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릅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사랑합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 교회에 들어와서 예배합시다. 헌금합시다. 」등이라고 하는 설교를 하면, 말씀 지금 한다. 그러나, 그것은 틀림이 아니고, 진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예수님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말하면, 신의 손은 당연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옮겨갔습니다. 이전에는, 유대인이 선민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선민에서는 없어집니다. 여기에서는, 예수그리스도 바로 그것이 포도의 나무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뽑힌 인간이 아니고, 다른 어느 나라의 사람이라도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라고 하는 신이, 이제부터는 중심이 되어 간다. 그 전의 유언은 이랬습니다. 「이제부터는, 나의 이름으로 기원하세요. 그리고, 나에게 기원하세요. 그렇게 하면, 내가 한다」라고 이야기된 예수님을 보아 주세요. 인간의 여지가 있었습니까? 인간의 여지는 없습니다. 예수님에게 따른 기도를 하고, 예수님의 명의로 기도를 하고, 게다가 그것을 예수님에게 바치고, 게다가, 이것을 성취해 가는 것도 예수님입니다. 어디에 인간의 의지나 활약의 여지가 있는 것입니까? 어디에 인간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포도의 나무는 교회에서, 포도의 나무는 크리스천이네요. 이라고 하는 개념은 오히려, 뭔가 인간측에 생길 것이 있을지처럼 의 착각합니다. 뭔가 인간측도 예수님과 공동에 일하는 무엇인가가 있을지처럼 입니다. 뭔가 예수님 앞에서 인간이, 「Yes」라든가 「No」라든가 대답하고, 뭔가 자신의 의지에 의해 예수님을 돕고 있는 것 같은, 예수님이 보답하지 않으면 안되는 무엇인가가 인간측에도 있을지처럼 , 크리스천은 논 크리스천과 다르고, 예수님에게 특별히 편애되는, 뭔가 특수한 인간이다라고 하는 착각을 여기에서, 우리들은 해서는 안됩니다. 당연 그리스도교가 지금은 예수님에게 뽑히고 있어서, 그리스도교가 예수님과 쓰나기(繫) 합쳐질 수 있습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진실의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예배 지키는 것은 당연해서, 什 1헌금 지불 우노는 당연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봉사를 하고, 선교하고, 이웃 사람을 사랑해 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포도의 나무는 그러한 의미인가 하면, 그것은, 좀 더 우리들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특히 장·칼뱅(Calvin)은 이러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아직 더럽혀지고 있는 것입니까? 」이라고 하는 질문에 대하여는, 장·칼뱅(Calvin)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성 있기의에서 한다. 」이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아직 죄가 남아있습니까? 」 「예수그리스도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이라고 대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포도의 나무에 연결되어 있는 가지다면, 우리들은 당연 그리스도(Christ)의 몸입니다. 그리스도(Christ)의 수족, 지체이기 때문에, 머리가 그리스도(Christ)로, 교회는 그리스도(Christ)의 몸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손이며, 발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예수님에게 연결되어 있는 크리스트 교도와, 연결되지 않고 있는 논 크리스천과 비교해 보아 주세요. 무엇이 틀릴 것인가? 다르지 않습니다. 대부분 같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크리스천이 논 크리스천과 같이 더럽혀지고 있습니다. 죄가 많고, 이웃사랑도 없고,그리고, 예수님마저 사랑하고 있지 않습니다. 변함없는 상황입니다. 어디가 어떻게 틀립니까? 오히려, 논 크리스천이 좋을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논 크리스천쪽이 이웃사랑이 있거나 해서, 논 크리스천쪽이 사려 깊고, 논 크리스천쪽이 상냥하거나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크리스천이라고 자칭하고 있어도, 무엇이 바뀐 것인가라고 들리면, 아니요입니다. 어떻게 다르니? 다르지 않습니다. 당연 그것이 크리스천이며는 안되지만. 그러나, 현시점에서는 변화가 보여지지 않습니다. 논 크리스천과 완전히 다르는 곳을 발견합니까? 발견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같습니다. 더구나 뒤떨어지는 것조차 있는 정도입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열매를 맺는다고는 도대체(일체) 무엇일까요? 이것은 모두 예수님쪽에서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쪽에서 힘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예수님이 예수님의 열매를 맺고 있는 것 뿐입니다. 제가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예수님의 힘으로, 예수님의 방법으로, 예수님의 자신의 하고 싶은 것, 바라는 것으로 열매를 맺게 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전회도 한 것 같이, 예수님이, 나에게 머물고, 신의 나라를 만든다고 하는 것은 어떠한 것이라고 하면, 예수님이 예수님의 집을 예수님의 방법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원입니다. 뭔가 우리들이 돌연 바꿀 수 있거나, 뭔가 제가 돌연, 성격이 바뀌거나, 뭔가 범한 실패가 회복해 해결하거나,라든가 말하는 것을 인간측이 하고 있을 작정이 되고,그리고, 남을 재판하기 시작하면, 당시의 유대인인 것 같아지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어땠습니까? 신에게 뽑혔습니다. 신에게 특별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신의 나라입니다. 나야말로 신에게 뽑힌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고, 이방인을 재판하고, 이웃사랑도 없고, 종교의식만 하고, 율법에 두어지고 있는 신을 사랑하고, 이웃 사람을 사랑하세요라고 하는 명령을 하나도 지키지 않고,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마저도 그 틀림을 가르치고, 지옥에 보내고 있는 저 유대인에 대하여 예수님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이제, 여러분들에게 그 농장은 맡기지 않는다. 나에게서 잘라 버린다」라고, 지금 유대인들은 말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 유대인들은 열매를 맺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내려와 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보시고, 예루살렘을 보시고, 아무 것도 열매 맺지 않았습니다. 이것만, 예수님이 기르고, 상냥하게 해 주고, 은혜를 주시고,그리고 보아 말을 주셨는데도, 이스라엘인들은 열매를 한개도 다물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예수님, 뭐라고 말했니? 절대로 다룬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루어서 다른 사람에게 건네 준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타인이, 크리스트 교도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서 포도의 나무가 또 새롭게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그 크리스천들도,또 다룰 수 있어 가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열매를 맺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제가 노력하고, 열심히 뭔가 열심히 해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까? 아까 말한 것 같이, 다릅니다. 예수님이 제 안(속)에 오셔, 예수님이 자신의 나라를 세우고,그리고, 예수님이 자신의 하시고 싶은 일을 하고, 예수님만이 열매를 맺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측은, 이 가지는 도대체(일체)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이 그리스도(Christ)의 몸이 된, 농장을 맡길 수 있었던 신의 밭이라고 말해지고 있는 우리들은 도대체(일체) 무엇입니까? 「나에게는 아무 것도 생기지 않습니다. 」 「저는 무능해서 무지합니다. 」 그리고, 「나에게서 어떤 선도 없습니다. 어떤 의도 없다. 단지 모두 예수님이 하신 것. 단지 모두 예수님의 영광. 단지 예수님의 희생이고, 예수님이 노력하셔, 예수님이 열심이어서, 예수님만이 일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찬미를 예수님에게. 모든 예배를 신에게. 모든 영광을 주로 답례합니다. 」 이것이, 가지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생활로 일체 하지 않습니다. 전부 자신이 하게 되고, 전부 자신이 생각해 낸 공훈이 되고 있어서, 전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전부 자신의 우리대로를 통과시키고, 모두신에 맞추지 않고, 제 생각에 신을 맞추려고, 신이 양보하게 말하는 태도를 취하고, 자신의 우리대로를 예수님 앞에서 결코 무너뜨리는 것도, 세우는 것도 하지 않고, 불평불만도 세우지 않고, 논 크리스천 앞에서 예수님이 지독하게 창피를 당하고 있어도, 마음을 괴롭히지 않고, 정확하게 예수님이 전해지지 않고, 많은 사람이 지옥에 가기도 아무 것도 느끼지 않고, 이웃사랑보다 자신밖에 생각하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영광 돌려 보내는 것입니까? 입으로 얼마 말해도, 교회에 들어오고, 예수님에게 영광 저것, 신의 나라에, 신의 영광 말야 노래 불러도, 생활로 아무 것도 돌리지 않고 있는데, 말뿐이어서, 신에게 영광, 주로 찬미하면 노래를 부르고, 주인이에요, 주인이에요라고 말해도, 하나도 예수님에게 영광을 돌려 보낼 수 없습니다. 하나도 자신의 생각을 부술 수 없고는, 정말로는 예수님을 찬미할 수 없습니다. 

장·칼뱅(Calvin)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영광을 돌려 보낼 수 없다면, 참된 그리스도교가 아니면. 우리들은 이것을 들으면 아픕니다. 그러나, 사실입니다. 

예수님에게 연결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나에게는 아무런 선도 없습니다. 모두 당신이 하신 것입니다. 」이라고 하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칼뱅(Calvin)은 이렇게 말합니다. 신을 알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몰라서는 안되면. 그것은 아담의 타락이후, 인간 스스로는 아무런 희망도 없습니다. 단지 파멸의 길을 진행하는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우리들을 구하기 위해서 . 이것이 유대교가 아닌,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입니다. 이 예수님의 도움없음에는, 우리들은 악을 좋아해 죄를 범하는 것이 필연적입니다. 예수님에게 기원합시다. 우리들의 마음에 살아져, 사악한 제 마음을 바꾸어 주시고, 마음에 헤이안(平安)이 방문하는 것을.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