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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kohama Glory Church

요한복음 7장37-39절

2018.02.14 15:20

"명절의 가장 중요한 날인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일어서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이 말한 바와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이것은 예수를 믿은 사람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사람들에게 오시지 않았다."

명절의 가장 중요한 날인 마지막 날 초막절의 명절이 지금 끝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것 같이, 초막절의 축제는 7일간 있습니다. 그리고 육일간 매일 한 번씩 돌고 그리고 칠 일째는 일곱 번 돌았다고 말하는 여리고 성벽을 돌았을 때와 같이 그리고 팔 일째는 단지 축하하는 것입니다. 어디도 돌아다니지 않고 축하만 하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대단한 날은 칠 일째인지 팔 일째인지 잘 알지 못하지만 단지 축제의 대단한 날에 예수님은 일어서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일어서서 큰 소리로 외친다고 하는 것은 의미가 있어서 유대인의 설교자들, 랍비들은 기본적으로는 앉아서 메시지를 전한다. 그것은 옛날의 기독교자들도 그렇게 한 것입니다. 설교가 길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설교자는 앉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낭독하는 사람은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 구별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낭독은 위대합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인간이기때문에 앉는다고 말하는 것이었지만 이날은 대단한 날에 예수님이 일어서서 외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이 설교하신 것은 앉으면서 함께 이야기 하는것이 아니고 일어서서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것때문에 중대발표가 있으며 특별한 평상시 와는 다른 메시지가 있다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이 축제의 마지막날에 예수님이 특별히 일어서시고 큰 소리로 민중을 향해서 외치심에 대해서 말하는 요한이 왜 이 표현을 한것인가 하면 이것으로부터 이야기하는 예수님은 평상시와 다른 예수님의 메시지가 있다고 하는 표현을 요한은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초막절의 축제가 끝난 마지막 날에 예수님이 일어서서 외치는 것입니다.

∼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로 와서 마셔라."∼

여기에서 초막절의 축제는 대단한 날입니다. 초막절 칠 일째인지 팔 일째인지 이 마지막 날은 보통이상으로 기뻐하며 춤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랍비들도 제사장들도 기뻐하며 춤추는 것입니다. 왜 그때에 여기에서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로 와서 마셔라" 라고 예수님이 외치셨는가 하면, 이것이 초막절의 축제 유래입니다. 초막절의 축제는 이전에도 이야기한 것처럼 수확의 축제입니다. 그것은 수확할 때, 옛날의 유대인들은 그 수확이 있는 곳에 지푸라기나 나무에서 초막을 만들고 그 초막에서 수확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수확할 때, 밤새도록 일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에 그러므로 가옥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가옥이라고 하는 의미도 있지만 이 초막절의 축제의 정말 유래는 "기우" 입니다. 그러므로 이 때 초막절의 축제는 우물의 주변 혹은 물장의 주변을 1주 합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우물로 부터 물을 기르고 제단에 쏟는다고 하는, 그러한 작업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칠 일째에는 "호산나! 호산나!" 라고 하나님을 극구 칭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을 극구 칭찬하는 대단한 위대한 날에 이 초막절의 축제 날에 예수님은 일어서서 물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초막절의 유래에 있어서 예수님은 여기에서 물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기우" 가 이 축제의 정말 큰 의미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초막절의 사이에 비가 내리면 내년은 풍작이다고 할 정도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미신이 아니고 이 계절에 비가 내리면 내년은 풍작이라고 하는 것은 농민 달력에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유대인은 초막절 축제를 하는 계절에 비가 내릴 것인가 아닌가는 다른 각국에서도 주목한다고 말할수 있는것이 농업 달력입니다. 그러므로 이 칠 일 사이에 비가 내리면 내년의 수확은 하나님이 보장한다는 의미로 제사장들은 단지 "호산나! 호산나!" 라고 축하하며 여기에서의 기도는 "내년에도 풍작을 주시고, 내년에도 비를 내리게 하시고 우리들을 부양해 주시옵소서." 라고 하는 축제이며 기도이며 예배 입니다. 그러므로 이 날은 대단한 날입니다. 내 년에도 우리에게 풍작을 주시고 이것으로 먹고 마시게 기도하며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있어서 모세는 위대한 인물 입니다. 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와서 40년 광야를 방황할 때, 하나님이 만나를 내리게 하시고 그리고 바위로 물을 마시게 하소서 라고 하는 역사를 이 사람들은 전원 알고 있습니다. 그 역사에 따르고 또 만나를 내리게 하고 물을 마시게 해주소서 라고 하는 축제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 이 예배가 대단한 날로 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이날, 예수님이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로 와서 마셔라" 라고 말하는 것을 외쳤다고 한들, 유대인에 있어서는 돌연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우물의 물은 또 마릅니다. 그러나 나에게 오는 것은 우물의 물이 아니고 영원히 마르지 않는 물을 여러분들에게 마시게 합니다." 이라고 말 하는, 그러므로 최후의 날 우리들에게 만나를 내리게 하고 모세가 이끌었을 때, 40년 시들지 않은 저 바위로 물이 흐르게 비를 내리게 하고 풍작을 주어 주소서 라고 하는 기도와 예배의 그 날에 예수님께서 일어서서 거기에서 우물의 이야기를 하는것 보다는 내가 있는 곳에 와서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를 마셔라 라고 말하고 있는 초대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그 대단한 날에 왜 일어서서 외쳤는가라고 하면 지금 예수님이 드디어 자신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오게 부르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은밀히 7일간 나타내시지 않고 갔는데 공식적으로 예수님이 드디어 일어서신 것입니다. 왜? 예수님에게는 이것을 할 목적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초막절에 간 것은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키고 싶은 것이 아니고 그 때는 이제, 우물도 아니고 모세도 아니고 내가 모세에게 만나를 내리게 한, 이 나에게서 오는 생수를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이 말한 바와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

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 속 깊은 말 이라는 것은 그 안에서 라고 하는 히브리(Hebrew)어입니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간장이라든가 신장라고 말하는 의미로 배 내장입니다. 당신의 창자로부터 물이 흘러넘쳐 나온다. 라고 예수님이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확히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했을 때와 같습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있는 곳에 예수님이 "나에게 물을 달라" 라고 말했을 때 "당신은 유대인 인데 왜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는 것입니까? 유대인은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라고 말하고 있을 때에 "당신의 남편을 데리고 오라" 이르시데 "나에게는 남편은 없습니다" 여자가 대답합니다. 에수님께서 "그렇습니다. 당신에게는 남편 다섯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라고 말했을 때에 여자는 "당신은 확실히 선지자입니다. 메시야가 곧 그리스도라 하는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알고있습니다 그가 오시면 모든것을 알려 주십시요." 라고 여자가 말했을 때, 예수님께서 "네게 말하는 내가 나다!" 라고 초대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온다."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저 사마리아의 여자를 불렀을 때와 같이 지금 예수님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것은 시편에서도 잘 노래 불러져서 "하나님의 영이 강과 같이 흘러든다" 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초막절은 원래 물의 축제이었던 것은 구약으로부터 잘 이야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스가랴 14장 16-19절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온 모든 민족 가운데서 살아 남은 사람들은, 해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다. 이 세상의 어느 백성이라도,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께 경배하지 않으면, 그들의 땅에는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다.

이집트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어울리지 않으면, 그들의 땅에도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않은 이방 나라들에게 내리실, 그 똑같은 재앙을 그들에게도 내리실 것이다.

이것은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않은 이집트 사람과 모든 이방 민족이 받을 벌이다." ~

이렇게 구약당시부터 초막절의 축제를 축하하는 사람, 주인을 예배하러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비를 풍부하게 내리게 하고 그리고 이 초막절의 축제에 오지 않고 자신의 일이 바쁜, 이제 결혼했기 때문에, 어린이를 낳았기 때문에, 밭일이 바쁘기 때문에라고 말하며 변명을 하면서 주로 예배에 오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화가 오고 거기에 두번 다시 비는 내리지 않는다. 끝까지 마른 사막과 같이 황무지 같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 초막절를 하러 하나님에게 예배하러 온 사람 위에는 풍부한 비가 내리고 풍요로운 물이 흐르고 풍요로운 물이 강과 같이 넘칠 것이다 이라고 하는 것은 옛날부터 구약시대부터 이스라엘의 백성에게 약속하고 있다. 이 초막절의 축제를 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극구 칭찬하면 여러분들에게 풍부하게 비를 내리게 하고 여러분들은 강과 같이 물을 마실수 있다. 그리고, 그 우물은 (물이)마르는 적이 없다. 구약시대 때부터 이 초막절의 축제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모두 모여서 축제를 한다. 이 초막절의 축제는 자신들의 내년의 풍작, 혹은 그것을 하지 않으면 영원한 형벌에 들어간다고 하는 자각의 원래로 이렇게 예루살렘에 지금 이국에 간 이민자들도 유대인이라면 주인을 예배하러 올라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단한 날, 모든 유대인들이 오르고 기우를 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고 해서 하나님에게 예배하러 온 모든 사람안(속)에서 예수님이 돌연 일어서고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로 와서 마셔라 」이라고 하는 초대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도 반드시 살리는 물이 그리고 두번 다시 마르지 않는 샘이 당신의 배 내장으로부터 당신의 마음 깊은 속 심연으로 부터 성령에게서 샘솟아 일어나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강과 같이 흘러 갑니다. 하고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도 이해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왜 물의 이야기를 하고 계신가? 유대인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며 합리적이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하나님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세도 아니고, 다른 어떤 우물도 아니다. "내가 당신에게 그 물을 마시게 하고 내가 그 만나를 먹게하겠다"라고 말씀하시고 초대입니다. 그래서 민중에게 이것은 전혀 새로운 것을 들었던 것이 아니고 이전부터 메시야를 기다려온 그 사마리아 여인처럼 기다려온 메시야의 말씀입니다. 언젠가 메시야가 오셔서 이렇게 우리를 영원한 정말 만나와 물을 먹여주는 영원히 구원을 얻는것이 온다는 것이 유대인의 희망이기 때문에, 이 큰 날에 그것을 예수님이 일어서서 선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유대인에게는 여기에서도 믿는 자과 믿지 않는 자가 선명히 나눠져 버립니다. 이방인들도 이야기를 듣고도 무슨 말을하는지 모릅니다.그러나 성경을 가까이 한 유대인 혹은 구약에서 축하를하고 이 예배를 고대하는 자, 메시야가 오셔서 우리을 이전 이상의 모세, 이전 이상의 다윗, 이전 이상의 영화를 우리에게 다시 보여 주겠다는 메시아가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유대인에게는 기다리고 기다렸던 사건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그랬습니다. 내가 메시아를 만날 경우,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신다면, 나는 어디에서 예배하거나 알 수있을 것입니까? 왜냐하면 메시아가 오셔서 나를 구원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어떻게 예배 하는가요"? 라고 물었을때 예수님께서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반드시 올것이다".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살리는 물은 성령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에서 바울이 이렇게 말한것입니다. "모세 우리는 성령에서 모두가 같은 성령에서 동일한 물을 마신것입니다. 그리고 그 바위는 그리스도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보내지는 성령을 받게됩니다. 그 성령을 받으면 두번 다시 너희가 마르지 않는다. 두번 다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라고 말하지 않는다. 두번 다시 하나님을 찾지 않고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빛이 되어 간다. 그래서 당신은 이제 두번 다시 이 산입니까? 예루살렘입니까? 라고 말하지 않는 날이 온다.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오지 않고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에게 직접 예배하고 직접 만날수 있게 되는 것이다. 라는 권유를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조건은 "나를 믿는 자", "나에게 온 자" 만 입니다.

물을 정말로 마시고 싶어하는 사람이 목마른 사람뿐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힘있는 예수님이 얼마나 기적을 행하시고 그런것에 관심을 보이지만 중요한 것은 목마른 사람에게만 허락하시고 전달될수 있습니다. 목마른 사람밖에 물은 마시지 않습니다. 마르지 않는 사람은 결코 물을 마시지 않아요. 그래서 예수님이 초대 할때, 이것을 들을수 있는 것은 목마른 사람뿐입니다. 그래서 목마른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 속에만 성령님은 일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물의 특징입니다.

광야에서 바싹 목마르고 이제 정말 어떻게 할수도 없는 실망감에 넘친 사람만이 이 예수님의 초대에 귀를 기울일수 있고 마시라고 한 물을 마실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피를 마시고 나의 떡을 먹으라". 라는 것을 이해할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갈증이 나고 실망에 밑바닥에 떨려진 사람만입니다. 그래서 그 사마리아 여인는 예수님이 보시기에 가장 메말라 있었던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먼저 사마리아 여인에게 가셔서 초청하며 "물을 마실 나를 믿으면 영원히 마르지 않응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그 사마리아 여인는 누구보다도 무엇보다도 메시야가 오는 것에 메말라 있었던 것입니다. 메시야의 구원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그것을 기도하고 있고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사마리아 여인에게로 예수님이 가신것입니다. 예수님이 처음에 그 물을 마시게 한 것은 사마리아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물"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특징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벤트를 하고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친구,지인를 부르는데 그들은 의리로 오지만 두번 다시 이제 오지 않습니다. 그 이벤트에는 와도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왜? 메말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세심한 전도, 참을성 있는 전도, 끈질긴 전도, 포기하지 않는 선교 활동은 필요합니다. 그 섬세한 인간에게 대한 배려없이, 우리는 기독교인이라고 부를수 없습니다. 이웃 사랑은 그 섬세함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혼을 구원한다것은 나의 노력, 나의 전도 회수, 전도지의 매수에서 행하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구원되는 것은 말랐을 때에 그 사람에게 성령이 부어 졌을때, 구원인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있는 것은 그 영혼이 메마를 때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영혼이 물을 갖고 싶어하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전도할때, 교회에 부를때, 그 영혼이 마르지 않다고 하고 영원히 마르지 않는것도 아닙니다. 반드시 그 기회가 마르는 순간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심한 전도를 하지 않고 세심하게 연락을 취하지 않고 그 사람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메마른 순간에 예수님이 있는 곳에 오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니면 세상의 방법으로 또한 채우려고 하고 유혹을 만납니다. 언제 마를 것인가는 하나님의 주권이며 우리가 말 할수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심한 전도, 세심한 배려 계속해서 연락하는 전도 방법이 우리에게 책임과 의무 입니다. 언제 마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떤 때에 그것을 원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그 사람이 말라 있을지를 볼수 있으며 또 마르게 기도하고 그리고 반드시 예수님께 가서 그 생수의 성령을 받으라고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하고 섬세한 활동을 계속해야 합니다. 자신의 선교활동 노력에 의해 구원되는것 아닙니다. 모두것은 성령의 역사하심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은 사람들은 이 때, 믿는 사람은 믿었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믿지 않았습니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직접 오시고 목말라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혼이 목 마른 것입니다. 이 영혼이 목 마른 사람만이 오늘 초막절의 마지막날에 예수님이 초래한 그 초대에 정말 부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예수님을 미워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 이것은 예수께서 자기를 믿는 사람들이 장차 받을 성령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영광을 받으시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에게 아직은 성령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

요한은 이것을 1세기 무렵에 쓰고 있기 때문에 오순절 후, 사도행전 활동 후 이것을 요한 복음서를 쓰고 있기 때문에 오순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요한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 복음 만은 이러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왜? 아직 오순절의 그 불의 성령이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단지 초래하는 것만으로, 나중에 와서 성령의 일을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심니다. 지금 성령이 오신 것이 아니라 뒤에 그 성령은 올 것이라는 설명이 더 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요한이 오순절 이후에 이 요한의 복음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예수님이 하고 있는 것은 성령을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초대하고 전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자신이 하시는 것을 지금 말씀 하시고 있습니다. "나의 잔를 마시고' 나의 떡를 먹으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다. 그래서 성령이 오시면 시간이 채워지지 않느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는 것도 예수님을 믿는 것도 내 의지가 아니고 예수님의 의지, 성령의 의지, 성령의 역사로 의해 선물로 거져 마시는 것입니다.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습니다. 어떤 조건도 더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술을 끊고 담배를 끊고 간음하지말고, 부정한것을 하지마라 말하는것이 아니고 지금 십일조헌금을 하고 이제는 일요일 예배에 나오라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이 "예수님을 믿어서 성령을 받아라" 는 무조건 선물이며 초대입니다.

하지만 인간 측에 있어서 선물이며 거져받은 것이라 말하고 예수님측에서는 무료었던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위대한 끔찍한 희생이 끝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대가를 대신해서 지불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공짜로 마신지도 모르지만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시기 위해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그 후 십자가에 달려 그 비참하게 채찍질을 당하시고 그리고 마지막은 창에 찔려 피와 물을 몸의 모든 피와 물을 쏟은 후 죽으시고 3일째에 부활하시고 그리고 40일 제자 앞에 나타나 그리고 승천하신 10일 후에 오순절의 날에 불의 성령, 약속한 그 성령을 부어 주신것입니다.

나는 이 부분에서, 로이드 존스의 성령론을 읽지 않았다면 아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성령론을 읽고 나서 이 부분이 무슨 말을하는지 이해합니다. 그 불의 성령이 내려 오지 않으면 기독교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알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날 불러도 아무도 예수님에게 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조차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이 예수님의 초청을, 오순절 후 분명 그들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 날 예수님이 무엇을 말했는가? 성령 강림을 말하고 있었는지 제자들조차 나중에서 알았습니다. 이 큰 날이 초막절 날에 예수님이 일어나서 외쳤을 때에는 아무도 이 초대를 믿지 않고 아무도 이 초래에는 오지 않으며 아무도 일을 모르고 응했습니다. 제자들조차 오순절 성령의 침례를 받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믿으면 우리 안에 성령님이 함께 계심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차게 됩니다. 하지만 "강처럼 넘쳐 흘러 간다" 는 일반적으로 충만과는 전혀 다릅니다. "넘쳐 난다" 입니다. 이 넘쳐나는 것은 불 성령님외에 없습니다. 개인의 구원에서 멈출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넘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레미야는 "이제 나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 이제 나는 누구에게도 아무 말도 말하고 싶지 않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말이 불 같이 내 면을 화로 타 올라 또한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되었다. 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입을 다물고 있을수 없고 표현하지 않을수 없고 사람들 속에서 빛을 나타내는수 밖에 없는 이러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내가 비록 전도하고 복음을 말했다고 해도, 내겐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내가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선교 이 전도는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성령이 넘쳐 흐른 결과입니다. 그래서 넘쳐 나온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믿고 나를 마시는 자" 입니다. 이 생수가 당신 안에 머물 수없이 쏟아져 나오고 다른 사람도 마실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 성령입니다.

자기 혼자 구원받고, 자기 혼자 교회에 다니고, 자기 가정만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 와 "예수님의 사랑이 넘친다" 와는 다릅니다. 우리들은 성령님을 사모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 내리게 하실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불 성령은 예수님이 어떻게 보내 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유대인들과 같이 축제를 축하하고 예배하고 극구 칭찬하고 찬양를 하고 겸손하게 땅에 엎드리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나는 죄 많은 사람이며, 나에게는 권리가 없고. 나는 이것을 요구할 권리가 없는 입장이지만 성령 강림을 바란다" 라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강 같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도 구해내시는 하나님이 위대한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 대가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지불한 위대한 역사에 의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자랑하고 내가 자만하는것이 아니다. 내가 일하고 평가를 올리고 뭔가 성과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몇 명 교회에 데리고 오고 몇명 전도 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은 성령 세례가 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내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 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도리, 하나님의 교리, 하나님의 섭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굶주려 목 마른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심판이며 하나님의 특성이며 선 입니다.

이것에 목 마른 사람은 다행이다고 복음에 있습니다. 가난하고 슬퍼하는 사람만이 이 행복이 오는 것이 아니라 의에 갈급하고 그 다음에 의를 위에 박해받는 자에게 오는 것입니다. 선교는 반드시 박해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불렀을 때, 유대인들은 굶주리고 목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들이야말로 하나님에게 선택받은 백성이며, 우리는 하나님께 복을 받고 사랑받은 특별한 인간. 특별히 선정 된 자. 그래서 당신과 나는 다르다고 말하고 사람을 업신 여기고 자신만 축복을 독 차지하려고 하는 서기관들에게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목 마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 마르지 않을 이유는 자신의 의가 소중한 것입니다. 자기의 길, 자기의 일, 자기의 계획, 자기의 감정, 자기의 삶의 설계가 하나님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결코 마를수 없습니다. 하나도 보이지 않고 하나도 들리지 않습니다. 전부 자기 중심이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목 마른 사람에게는 다시 마르지 않는 넘쳐 나오는 은혜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희생하시고 오순절 날에 이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호세아서에, 그들은 하나님의 지식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하나님의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식을 요구하지 않은 까닭에 하나님께 심판을 받았고 버림받았다고 써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하지 않은 사람입니까? 스가랴서에 써있는 초막절의 축제에 오지 않았던 사람, 이집트의 백성, 이방인,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은 사람 위에 비를 결코 두 번 다시 내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저주입니다. 두 번 다시 당신에게 성령님을 내리지 않는다. 왜? 그 사람이 보고, 듣고, 깨닫고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불렀을 때를 따르지 않고 초대했을 때에게 듣지 않고 초대했을 때에 오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의 사람을 향해 하나님은 "두 번 다시 마시지 마라", "두 번 다시 내 말은 묻지 마라" 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백성은 광야에서 40년동안 만나를 먹었습니다. 단 하나 가나안 땅에 들어갈수 없었습니다. 여호수아,갈렙 이외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죽는 날까지 교회에 속하고 죽는 날까지 성령의 은사를 받고 죽는 날까지 기도 응답이 올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는 수 있습니다. 재림의 생기는 아닙니다.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목말라하고 순종하고 예배하고 찬양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힘을 다하고,뜻을 다하고,마음을 다하고,주의 깊게 따르고 두번 다시 마르지 않는 불 성령을 받고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구원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초래하실 때 들어야 합니다. 초래 할 때에 먹어야 하고, 마셔야 합니다. 그것은 성찬식 빵을 먹고 포도즙을 마시는것 같은 의식이 아닙니다. 사마리아의 여자에게 말한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온다" 는 성령이 부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성령께서 내 영혼을 인도해야 진정한 예수그리스도를 예배할 수는 있습니다. "나중에 당신이 성령을 받으면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계속 탄원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성령의 부으심을 구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도 나타나기를 기도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