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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kohama Glory Church

요한복음 7장1-13절

2018.02.14 15:10

~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 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세상이 너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 명절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에 있느냐?" 하고 예수에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한다 하나,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없더라. ~

7장1절에서 ~그 뒤에 예수께서는 갈릴리를 두루 다니셨다. 유대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유대 지방에는 돌아다니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초막절의 축제라고 말하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수확 추수감사절이지만 미국에서 말하는 수확 추수감사절이 아닙니다.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의 백성이 광야에서 초막절를 나무에서 만든 간단한 텐트와 같은 곳에서 살면서 하나님이 우리들을 구해 주셨다고 하는 감사의 축제이기도 하고 또 1년의 수확의 감사의 날이며 지금 우리들이 미국인에 맞추고 있는 추수감사절은 이 유대인의 초막절의 축제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미국인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고 성경대로의 초막절의 축제를 우리들도 하고 싶지만 특히 이 초막절의 축제는 일주일이 계속되므로 외국에 흩어져 있는 이민자 유대인들이 1년에 한번 모여드는 대축제입니다. 그리고 이 대축제를 축하하려고 외국인들이 이 예루살렘에 집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집결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께 뭐라고 말했는가 하면,

~"당신들의 제자들도 당신이 행하고 있는 일들을 볼 수 있게 여기를 떠나서 유대로 가십시오.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이 은밀하게 행하려 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라는 법입니다. 당신이 이 것들을 행하고 있으면 자기을 세상에 드러내십시오."~

라고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루살렘을 나가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그들은 갈릴리의 시골에 살고 있습니다. 갈릴리 시골에서 그다지 많은 사람이 살지 않고 있는 곳에서 정말로 일부분의 한정된 사람 앞에서 만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5천명을 먹이고, 물위를 걸으시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그리고 여러가지 병을 낳게하시고, 귀신들린자도 고치셨다. 이것을 예수님의 형제들도 보고 있고 이 기적적인 사건, 심상치 않은 사건을 예수님이 행하시고 있는 것 자체를 보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는 가족들, 그리고 예수님이 행한 많은 기적이 지금까지 촌구석에서 뭍혀서 일한들 무슨 메시아가 되겠느냐고 말하며 세상에 드러낼것을 촉구 하는것이다. 그러나 형제들은 아직까지 예수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지않고 있으므로 대 도시로 가라고 합니다. 유대로 나가고 유대인의 주된 사람들, 정치가들, 의원들, 바리새인, 사두개인, 그리고 모든 율법학자 앞에서 그것을 행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인정을 받으면 우리들도 그럭저럭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공공의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적이 행하여져서 그리고 그 대다수가 예수님을 인정하면 우리들도 인정하겠다. 그러나 지금 당신이 이런 시골에서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니 자기를 공공의 장소에서 자기의 힘을 발휘하려고 한다면 어차피 예루살렘에서 정상인 정식한 유대인들에게 인정을 받으십시오. 이런 시골사람들, 시골의 사람들에게 추켜 세워졌다고 의미가 없습니다. 라고 하는 상태를 예수님의 형제들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여기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믿지 않고 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주변에는 확실히 기적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 시골이든, 도시라도 몇백명, 몇천명이라는 사람들이 항상 예수님의 주변을 헤매고 있습니다. 그리고 형제들은 공공의 장소에서 자기들을 곤란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므로 어차피, 공적으로 정식으로 인정을 받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면 우리들도 더 편해지는데. 이런 식으로 이것저것 일컬어져서 이것저것 탐색되는 것은 이제 끝까지 용서 못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도 정식인 자격을 얻어 주기를, 훌륭한 분 정식인 모두가 인정하는 무엇인가를 이스라엘의 어떠한 포지션에 대해서 원한다. 라고 하는 것을 예수님의 형제들이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고자 하는 마음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사람을 구하시려고 하실때, 도우시려고 하실때 형제는, 도움이 하나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행하신 것들을 무엇하나 좋다고는 생각 안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때는 언제든지 와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여러분들을 증오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를 미워하고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 대해서 그 행동이 나쁜 것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축제로 올라 가세요. 나는 이 축제에는 가지 않습니다. 나의 때가 아직 오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은 여기서 형제들에게 이렇게 대답 하십니다.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때는 언제든지 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때란? 시간적인 때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지금, 예를 들면 일부분의 사람앞에서 공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한들, 공공의 장소에서 평생 계속하고 있다 해도, 결국 예수님께 있어서는 예수님의 때가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의 때는 지금 와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당신의 때는, 7절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시간과 이 예수님의 가족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말하고 있는 시간은 완전한 의미를 가지지 않습니다. 결코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시간입니다. 그리고 형제들, 가족들은 이 세상과 맞장구를 쳐주고, 이 세상과 섞이고, 이 세상과 완전히 같은 생각을 하고, 이 세상과 완전히 같은 습관으로, 이 세상과 완전히 같은 상식을 가지고 살아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다릅니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과 맞장구를 쳐주고, 이 세상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여러분들은 이 세상이 당신을 구박할 리도 없고, 이 세상이 당신을 싫어 할 리도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세상과는 다릅니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나를 미워하고 있습니다. 왜? 내가 이 세상에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존재 바로 그것. 죽은 사람을 살리고, 병자를 고치고, 그 기적을 행하실때 마다 "당신의 죄는 용서 되었다."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죄가 있고, 이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모두가 더럽혀지고 사단의 자식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대로 입니다. 당신들은 이 세상의 사람입니다. 이제 이 세상과 섞여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과 아무런 다른 시간도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세상과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축제로 올라 가라. 나는 이 축제에는 가지 않겠다. 나의 때가 아직 차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후에, 축제에 올라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축제는 예루살렘에서 진행하고 있는 초막절의 축제가 아니고 이 세상의 제사에 가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 가시오. 나는 이 세상에 가지 않는다. 당신은 이 세상과 같은 생각을 합니다. 당신은 이 세상이 가지고 있는 시간을 보냅니다. 나는 이 세상과는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이 세상이 가지고 있는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후,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공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공도(公堂)에 들어가 전원이 보는 앞에서 여러 기적을 행하시고 여러 말씀을 전하시고 여러 사람에게 소문이 전해집니다. 그러나 형제들은 절대로 예수님이 계신 거기에는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다가 형제들이 올라 간 후에 은밀히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게 은밀히 올라 가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의 예루살렘에서는 터무니없는 소문이 많이 퍼지고 있습니다. 우선 제사장들, 율법학자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찾아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예수를 이제 그만 붙잡아 들이자, 예수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율법을 소흘히 하고 자기들의 입장을 나쁘게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부분이 유대인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예수님에 대한 여러 말이 오고 갔습니다. "이분은 좋은 사람이다" 혹은 "아니다 이분은 위험하다" 혹은 "이분은 여러 기적을 행하고 있다" 메시야 일지도 모른다, 아니다 이분은 사단일지도 모른다. 여러가지 소문이 예루살렘 안에서 퍼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적으로 예수님을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드러내 놓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단지 소문만을 흘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찾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당당하게 말할 수 없었습니까? 유대인들을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일부의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죽이려고 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 입장을 밝히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제 또 한 편의 유대인들입니다. 이제 또 한 쪽은 예수를 완전히 죽이려고 찾아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른 한 쪽의 유대인들은 소문을 퍼트리는 것만으로 자기의 입장을 밝히지 않는 유대인들. 예수님의 가족들도 같습니다. 저렇다, 이렇다고 소문은 듣고 있어도, 예수님을 공공연한 장소에서 "이분은 이러한 분이시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는 그 어느 쪽과도 같지 않고 당신과 다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 크리스찬은 어느 입장에서 서고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이 유대인들을 보면 누구나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메시야가 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메시야가 올 때에, 유대인들속에서는 이러한 전설이 있습니다. 메시야는 돌연히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이 지상의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어서 그리고 서서히 그 메시야는 숨겨진 곳에서 공적으로 될 때에 오시는 것입니다. 숨겨져서는 있지만 공적으로 될 때에 오시기 때문에 그 날을 바라며 기다리자고 말하는 것이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알고 있다면 메시야가 아니다 라고 말하며 판단합니다.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는 것이 메시야다 라고 말하는 전설입니다. 그 후 그것을 소문으로 이야기하지만 그 예수는 알려져 있습니다. 요셉의 아들로, 목공의 아들로, 그의 가족은 누구누구로 …이기 때문에,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들은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메시야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유대인들도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적을 행하는 것은 메시야가 아니면 도대체 누구냐? 이런 기적을 예전에 누가 일으킨 것인가? 이런 권위 있는 가르침은 도대체 누가 가르쳐 준 것인가? 라고 말하는 한 쪽의 사람들입니다. 어쨌든 모두가 다양한 소문이 퍼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정도로, 예루살렘은 그 소문으로 박신거립니다. 그 곳에 예수님은 은밀이 가시고 그리고 성전 뜰에서 또 가르치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누구라도 자기의 책임을 수행하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왜 입니까? 이 세상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도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다." 라고 아무도 공공에서 말하지 않습니다. 왜? 죽음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나를 미워할 것이다." 왜? "내가 이 세상의 틀림을 바로잡고 있기 때문이다."이라고 예수님은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세상과 예수님은 결코 서로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셈인데, 이 세상에 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메시야가 오는 것을 바라고 있다고 입으로 말하면서도, 이 세상과 같은 파장으로 살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있다고 말하면서, 이 세상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자기의 책임으로 예수님을 고백하는 것을 일체 하지 않습니다. 단지 여기저기 도망쳐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수군거리고 있는 것 뿐입니다. 왜이지요? 이 세상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싫음을 판단 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미움받고, 이 세상에서 튕겨져서 떠나 가는 것이 싫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분명히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 입장을 분명히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 입장을 애매한 채로 있고 싶습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족들이 그랬습니다. 숨겨져 있지 않고, 공식적으로 분명히 말 해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때는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적으로 지금 일을 하고 있는것 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기적을 행하고 소문이 나고 누구나가 예수님의 이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공적인 일을 하고 있는것 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측 입장으로서는 지금 공적으로는 아무 것도 일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측의 입장에서 공적으로 예수님께서 일하시는 것은, 단지 한 번만입니다. 십자가에 있어서 죽는다고 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 있어서는 공적인 일입니다. 그러므로 내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아직 공적으로 일하고 있지 않고, 그 시간이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이 세상에 가시오. 나는 이 세상에는 가지 않는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간다든가, 가지 않는다든가, 물리적인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들은 이 세상에 가시오. 나는 이 세상에 가지 않는다. 왜? 나는 이 세상에 나갈 때는 단 한번 십자가로 죽을 때 뿐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지금의 입장입니다. 그리고 지금 2천년이 지난 현재,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어떤 날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것은 누구나가 다, 어느 종교라도 알고 있어요. 그러나 그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단지 하나뿐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었다." 입니다.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예수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것은 십자가로 죽은, 그 사건 하나입니다. 여기에서 있었던 일,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 갈릴리에서 있었던 기적적인 이야기는 누구 혼자서 모릅니다. 누구 혼자 몰라도 됩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이런 기적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공적인 인생의 일은 작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정말로 공적인 하나님편에서 선 하나님의 아들로써 일은 단 하나,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던 유일한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의 때가 아직 오지 않으므로, 내 때가 아직 오지 않고 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금도 옛날도 밝혀져 있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십자가형입니다. 십자가로 사형으로 된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끔찍한 이 죽음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 예수님의 소문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이것밖에, 여기서밖에, 자신의 일에 초점을 맞추시고 있습니다. 기적을 행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치유하고, 이것들은 예수님에게 있어서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이것만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치유해주고, 위로해주고, 힘을 받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받고, 행복을 원하고, 평안을 받고, 자기의 환경, 자기것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이 세상에 들어가고 사탄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분명히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입장이 나쁘게 되는 것에는, 하나도 손을 대지 않습니다. 자기가 불리해져서, 불이익 받기 때문에, 자기가 이 세상에서 버림받고, 미움받을 때에는 쏜살같이 도망칩니다. 이것이 지금의 나이고 여러분들의 상태입니다.

이것들을 예수님은 가장 싫어하십니다. 예수님이 가장 미워하는 것은 알았다도 아니고 아니요도 아닌, 미지근한 상태를 토해 버린다고 성경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문만 전하고, 좋은 장소 잡고, 기적만 받고싶지만 예수님이 누군가, 내가 누군가? 나는 어떻게 살것인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아무것도 분명히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애매하게 해두고 싶은 것입니다.

크리스찬이 공적으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무엇때문입니까?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입장을 차지할 때입니다. 크리스찬이 이 세상에서 공적인, 정말로 공적으로 이름을 제시할 때는 언제입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이야기되는 그 장소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살았고 베드로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에베소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기회를 충분히 살려라" 입니다. 이 기회라고 하는 시간은 무엇을 말합니까?

유대인에게 있어서 시간은 두 가지가 있는 것입니다. 의미도 없이 흐르는 시간과, 의미를 가지고 목적을 가지는 시간, 이 두 가지를 구별해서 "시간"이라고 하는 말을 가려 쓰고 있습니다. 그 가려 쓰고 있는 말 안에 예수님이 이 세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의미도 없는, 목적도 없는, 단지 빈둥빈둥 흐르고 있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있어서 의미가 있는, 유대인에 있어서 의미가 있는, 원하고 있는 그 시간은 무엇입니까? 구원받는 구제되고 있는, 이 시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에 모든 초점을 두고 이 세상과는 결별하고 이 세상과는 일체 만날 일 없고 용해할 일도 없고 이 세상에 미움받고 공적으로 그리스도(Christ)를 고백할 때, 예수님의 시간입니다. 이 것이야 말로 예수님의 시간입니다. 이 세상에 들어가고 이 세상에 타협하고 스스로 폼잡고 앉아 하나님을 이용하고 그리고 소문은 전해도 자기의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자기에게 명확한 책임을 지는 것을 회피하고 예수님의 형제들과 같은 것입니다.

기적을 행하고 유명해지면 나는 당신을 인정합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 형제들과 같습니다. 우선 나에게 기적을 일으켜라. 그렇다면 나는 당신을 인정합니다. 지금 크리스찬들이 하고 있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나와 당신의 시간은 완전히 다릅니다. 내가 사는 세계와 당신이 사는 세계는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라고 말듣는 것입니다. 나중에 어디에서 살았으며, 어떤 시간을 보냈으며, 어떤 목적으로, 무엇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인가? 이것을 모르면 단지 흐르는 시간을 보내는 것 뿐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이 세상에서 타협하고 무책임하게 아무런 책임도 없이, 자기의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고, 그리고 이 세상에 타협하는 것을 믿어서 구원받은 사람의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때에 안에 들어간다 라고 말하는 것은 이 세상과 결별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그리스도의 지배하에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사탄의 지배하에 들어 있을 때 와는 다릅니다. 의미도 없는, 빈둥빈둥 흐르는 시간, 그런 인생을 지나쳐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지금은 평안하다고 깊이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교회에 속하면 예수님에게 속했다고 깊이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나중에 밝혀집니다. "나와 당신은 완전히 다르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당신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그러한 것입니다.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살아 있어서는 내 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다" 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예수그리스도를 증명도 하지 않고, 그 입장에 서는 것도 하지 않고, 이 세상에 타협해서 살아 있어서는 막상이라고 할 때 "내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합니까?" 라고 물어보게 되는 것입니다.

깊이 이 세상에 침체에 있고, 이 세상에서 시간을 빈둥빈둥 흘려 보내고, 자기의 포지션을 밝히지 않고, 손해 보는 것도, 희생 하는 것도 피하고, 자기에게 오는 불 이익을 전부 피하고 남에게 맡기고, 목사에 맡기고, 다른 선교사에 맡기기로 하고 사는 것이 성도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과는 다른 곳에서 살고 있다 라는 것으로는 안됩니다.

이 유대인들과 같이, 소문만 전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를 알고 있습니다.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를 소문만을 전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이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뒤따라가고 언제나 함께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무엇을 한 것입니까? 십자가 앞에서는 예수님에게서 도망쳤습니다. 내가 천국에서 내려가 온 빵이다 라고 말하기 시작했을 때에, "지독한 믿지못할 가르침이다" 라고 말하며 떠나 간 사람들입니다. 십자가를 이야기 한 순간에 싫어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죄를 회개해라, 라고 말한 순간에 떨어져 갑니다. 결코 자기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예수님이 이 세상이 악하다고 말씀하시는데, 자기가 악하다 라고 말들었을 때에는, 예수님에게서 떨어져 가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이 오늘 초막절에서 소문을 내는 유대인들의 모습입니다. 결코 예수님의 마음을, 아무것도 깨닫지 않습니다. 결코 예수님의 나라에 절대로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결코 예수님과 같은 시간을 보낼 수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입니다. 단지, 소문만을 전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좋은 사람"이었다라고 말듣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좋은 사람, 기적의 사람, 힘있는 사람이라고 소문이 나고 싶어서 한 적은 없습니다. "십자가의 예수" 라고 "십자가로 죽은 예수" 라고 말듣고 싶으신 것입니다.

바울이 왜 목숨을 걸고 "나는 십자가이외 아무것도 모르기로 작정 했다" 라고 말한 것인가? 십자가의 의미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온 것은 이외에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와 지금 교제 할 이유도 이것밖에 없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이유는 이것밖에 없습니다. 십자가 이외, 우리들 크리스찬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들은 애매하게 하면서, 입장을 이 세상에 맞추어, 자기는 이 세상과 손 잡고 살면서 예수님를 이용하는 것 뿐, 이용하고 괴로우면 불평을 말해버립니다. 이 유대인들 처럼, 예수님의 형제들처럼 입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런 입장에 서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내가 나를 응석받이로 만들고 예수님에게, 이런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에게 실례하는 태도를 언제까지나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중도판단으로 예수님을 믿고 싶지 않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십자가 앞에서 도망쳤습니다. 이 세상은,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도망치는 것입니다. 옛날도,지금도 사람들은 도망치고 싶은것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그 장면이 오면, 모두가 도망치는 것입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습니다. 즐겁고, 기적만 보고..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 예수님의 이름을 외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십자가의 "죽음" 입니다. 그리고 "부활" 입니다. 그것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받는다, 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받았다면 우리들이 단지 사는 것으로 용서되지 않습니다. 빈둥빈둥 의미가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용서되지 않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한 순간, 예수님과 같은 나라, 예수님과 같은 장소, 예수님과 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이 세상과의 결별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원리입니다.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양쪽 발을 돌입해서 어떻게든 되는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중간따위 존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속하지 않는 사람은 사탄에게 속한다고 씌어져 있습니다. 천국이 아니면, 지옥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저는 살아가고 싶고 그렇게 바라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믿고 그리고 부활을 믿고 우리들은 새로운 사람으로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탄원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이 세상과의 결별이란? 회사를 그만두고, 이혼하고, 은둔자가 되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이 세상의 가치관과의 결별입니다. 사는 목적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리스도(Christ)를 증명하는 증인은, 성령님의 힘없이는,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먼저 기도합시다. 그 능력, 용기, 지혜, 방법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그것이 옆에 있는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여러분에게 쏟아지기를 기도합니다. 아멘